21세기 중국의 제갈량 왕후닝의 갈마행 : 중국은 무엇을 약속하고 유보했나
시진핑 주석의 방북 한 달 만에 중국 권력 서열 4위 왕후닝이 평양을 찾았다. 겉으로는 북·중 우호조약 65주년을 기념하는 성격이지만, 방문의 형식을 뜯어보면 단순한 기념행사 이상의 신호가 읽힌다. 중국은 교통·관광을 포함한 실무 협력 확대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방북 한 달 만에 중국 권력 서열 4위 왕후닝(王滬寧)이 평양을 찾았다. 겉으로는 북·중 우호조약 65주년을 기념하는 성격이지만, 방문의 형식을 뜯어보면 단순한 기념행사 이상의 신호가 읽힌다. 중국은 교통·관광을 포함한 실무 협력 확대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새 조약이나 공동선언을 통한 관계 격상은 없었고, 기존 1961년 조약의 의미를 재확인하는데 그쳤다. 그 상징적 종결 장면은 평양이 아니라 원산 갈마에 있었다.
세 가지가 이례적이었다
이번 방문은 세 가지 점에서 이례적이다. 첫째, 인물이다. 북·중 간 공개된 고위급 교류 기록에서 현직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의 단독 방북 사례는 쉽게 찾기 어렵다. 북한에 ‘정협’과 동일한 제도적 대응 기관이 없다는 점에서도 눈에 띄는 인선이다. 조약 55주년과 60주년에도 정상 간 축전과 기념행사는 있었지만 중국 최고위급 대표단의 방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65주년에 권력 서열 4위가 간 것은 기념행사의 격을 넘어선다.
둘째, 대표단의 이름이다. 중국은 이를 ‘정협 대표단’이 아니라 ‘당 및 정부 대표단’으로 불렀다. ‘정협’ 차원의 친선 방문이 아니라 당 중앙과 정부가 함께 책임지는 임무 수행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셋째, 출국 동선이다. 왕후닝은 마지막 날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를 둘러본 뒤 평양으로 돌아가지 않고 갈마비행장에서 곧바로 출국했다. 중국 권력 서열 4위가 원산에서 일정을 마치고 출국한 장면 자체가 이례적이다. 이렇듯 인선과 명칭, 동선을 함께 보면 이번 방문이 단순한 기념행사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난다.
2019년과 다른 중국의 선제적 접근
2018~2019년과 비교하면 차이가 선명하다. 당시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15개월 동안 네 차례 중국을 찾은 뒤에야 시진핑이 답방했다. 총리급 왕래는 없었고, 경협 구상도 제재와 국경봉쇄 속에서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북한의 선행 방문에 중국이 답하는 구도였다. 2025년에는 리창 총리가 16년 만에 방북하며 중국이 먼저 문을 열었고, 시진핑 주석의 방북 이후 한 달 사이에 박태성 총리 방중과 왕후닝 방북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중국의 선제적 접근 뒤 양방향 고위급 교류가 가동된 것이다.

[그림 1] 북·중 고위급 교류, 선행 방문의 주체가 바뀌었다
그 배경에는 북·러관계의 급속한 밀착이 있다. 2024년 북·러 조약으로 북한은 냉전 종식 이후 다시 두 나라와 상호군사원조를 약속하는 조약관계를 형성하게 됐다. 중국으로서는 북한에 대한 독점적 안보 영향력이 약화될 가능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이 구도를 활용해 국경 통상구 재개, 직항 복원, 관광 같은 경제 교류의 실질적 복원과 관계의 전략적 격상을 동시에 요구하는 신호를 보냈다. 박태성 총리도 방중 시에 김정은 위원장의 뜻이라며 북·중관계를 ‘가장 강력한 전략관계’로 발전시키자는 메시지를 중국 측에 전달했다.
실무 협력은 확대하고, 제도적 격상은 유보했다
공개된 결과만 놓고 보면 중국의 대응은 이중적이다. 교통·관광 등 실무 협력 확대에는 호응했지만, 새 조약이나 공동선언을 통한 관계 격상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대신 기존 1961년 조약의 정치적·법률적 의미를 재확인했다. 이는 북·러 조약 수준의 상호방위를 새로 약속할 경우 커질 한반도 유사시 개입 부담과 한·미·일 결속 강화 가능성을 함께 고려한 선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이 공식적으로 강조해 온 비동맹 원칙과의 마찰도 피할 수 있다.
왕후닝의 인선은 이런 메시지 전달 방식과 관련해 주목할 만하다. 그는 장쩌민부터 시진핑까지 3대에 걸쳐 당의 이론과 정치 담론을 설계해 온 인물이다. 중국은 이번 방문에서 1961년 조약이 이미 “피로써 맺어진 전투적 우의의 법률적 기초”를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2024년에 새 조약으로 제도화한 내용을 중국은 기존 조약 안에서 이미 보장하고 있다는 논리다. 새 문서를 내놓는 대신 옛 조약의 전략적 의미를 다시 높인 셈이다. 김정은 위원장도 접견에서 우호조약을 “관계의 전략적 성격을 정의하는 조약”이라고 화답했다. 공개 발언만 보면 북한 역시 당장은 이 틀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갈마에서 일정을 끝낸 데는 이유가 있다
경제 실무를 직접 담당하지 않는 왕후닝이 왜 관광지구에 갔을까. 그의 발언이 하나의 단서를 제공한다. 그는 갈마지구를 투자나 수익의 언어가 아니라 “조선로동당의 인민대중제일주의사상의 구현”이라고 평가했다. 인민대중제일주의는 김정은 위원장의 대표 통치 담론이다. 중국 이데올로기 분야의 최고위 인사가 이를 공개적으로 높이 평가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새로운 제도적 약속 대신 기존 북·중관계와 김정은 위원장의 통치 정당성을 언어적으로 재확인한 장면으로 읽을 수 있다.
동시에 갈마행은 실무 협력의 방향을 보여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갈마지구는 김정은 위원장의 대표 관광 프로젝트이고, 성패는 중국인 관광객의 유입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관광 자체는 유엔 대북제재의 포괄적 금지 대상이 아니지만, 결제 방식이나 지정기관의 관여, 항공·금융 거래에 따라 제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왕후닝이 현장을 둘러본 뒤 갈마비행장에서 출국한 장면은 향후 중국발 원산 항공편이나 관광 전세기 운항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만 구체적인 노선이나 운항 일정이 공식 발표된 것은 아니다. 갈마 일정은 이번 북·중 교류가 어디를 향하는지 보여준 상징적 종결 장면이었다.

[그림 2] 실무 협력 확대와 제도적 격상 유보 — 본 진단의 해석 틀
이 해석은 앞으로의 실행으로 검증될 것이다. 중국인 단체관광과 원산 항공편이 실제로 재개되면 실무 협력 확대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반대로 북·중이 새 조약이나 공동선언을 내놓는다면 관계 격상의 수준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
대북 제재의 틈과 중국의 계산을 함께 보아야 한다
우리로서는 이러한 왕후닝의 방북 동정과 북한의 움직임을 놓고 대중, 대북 정책과 관련해 몇 가지 챙겨야 할 대목이 보인다. 첫째, 2019년의 기억으로 지금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당시 북·중 밀착은 상징적 이벤트에 비해 실행이 제한적이었지만, 지금은 총리와 실행 라인이 오가며 교통·관광 등 구체적 협력 의제가 논의되고 있다. 관광처럼 포괄적 제재 대상이 아닌 분야에서 교류가 살아나면 북한의 외화 유입 통로가 확대돼 제재 효과를 약화시킬 수 있다. 정부는 제재 비저촉 분야의 북·중 교류 실태를 별도로 추적하고, 결제·항공·금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제재 회피 가능성까지 점검해야 한다.
둘째, 중국이 제도적 격상에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외교적 공간을 읽어야 한다. 중국은 한반도 유사시의 과도한 연루와 한국·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모두 부담스러워한다. 이는 북·중·러 협력이 곧 완전한 군사블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중 소통이 파고들 공간도 여기에 있다. 중국의 연루 회피 성향과 안정 선호를 한반도 위기관리에 활용하는 외교를 설계해야 한다.
셋째, 문서만이 아니라 담론과 실행을 함께 관찰해야 한다. 북·중관계의 변화는 새 조약 같은 큰 사건에 앞서 관계를 부르는 명칭, 노동신문과 신화통신의 표현 차이, 통상구 운영과 항공편 개설 같은 작은 신호에서 먼저 나타난다. 특히 중국인 단체관광의 재개 여부, 갈마를 잇는 항공편, 결제와 투자 방식은 이번 접근이 상징을 넘어 실행으로 이어지는지를 판별할 핵심 지표다.
한반도 평화는 강대국 간 거래의 결과물로 주어지지 않는다. 북·중이 주고받는 신호를 정확히 읽되, 그 해석을 불변의 사실로 단정하지 않는 냉정함도 필요하다. 동시에 그 거래에만 집중하다 변수의 복잡성을 스스로 초래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평화와 통일을 상수로 놓는 우리의 원칙을 지켜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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