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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시민아카데미 스케치 게시판입니다.

제목 3.1운동 100주년, 저항시 산책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19-03-19 조회 4090

평화시민아카데미 '예술로 본 역사의 한 장면'

                    1-3.1운동 100주년, 저항시 산책-

 

강사 : 김응교(시인,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

일시 : 201937

장소 : 평화재단 3층 강당

 

2019년 평화시민아카데미 첫 강좌를 열어주신 김응교 교수님께 대단히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세분의 시인을 통해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시대에 우리민족이 겪었던 아픔을 다시 한번 상기해보고 그 속에서 한 개인의 슬픔이 문학적 측면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알아보는 유익한 시간이였던거 같습니다. “시인 앞에 저항이라는 단어를 쓰는 걸 원치 않는다. 저항은 자연스럽게 삶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는 말씀부터 강의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한용운님은 승려로써의 수행자의 삶과 불교철학에 정통한 지식인의 삶, 그리고 불의에 항거한 선구자, 한 시대를 관통한 문학인으로써의 존재한 인간이었습니다. 조선불교유신론을 통한 불교개혁에 앞장섰고 어마어마한 양의 팔만대장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그 사상적 광범위성이 두드러졌습니다. 불교 교양 잡지 '유심'의 뿌리로써 역할을 하였으며 3.1운동등 민족사의 거국적 발자취에는 한용운이 있었습니다.

 

 

나의 길 -한용운-

이 세상에는 길도 많기도 합니다.

.....

그러나 나의 길은 이세상에 둘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남의 품에 안기는 길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죽음의 품에 안기는 길입니다.

....

아아, 나의 길을 누가 내었습니까.

아아, 이 세상에는 님이 아니고는 나의 길을 낼 수가 없습니다.

....

 

 

진정한 저항시인은 자연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진짜 사랑이라는 건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는 것이 불행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한용운은 민족의 암흑기에서 우리 운명을 구제할 유일한 사랑을 찾아야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정지용과 윤동주는 한국 현대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시인입니다. 윤동주가 쓴 시 10여편은 정지용 시를 모방하며 연습한 습작시로써 두 분은 일본 도시샤대학을 택해 공부한 인연이 있고 그 대학에는 두 시인의 시비가 같은 공간에 세워져 있습니다. 정지용은 윤동주의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의 서문에서 윤동주를 "한마리 잉어"로 표현했다. 그렇게 두분은 시혼(詩魂)으로 조용히 만났던 것입니다.

 

 

정지용의 [향수], 어떻게 읽어야 할까

교수님은 이 시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읽으면 읽을수록 [향수]의 대중적인 형식 안에 숨어 있는 진지한 표현들에 눈이 갔고 끓이면 끓일수록 우러나오는 어떤 깊은 맛처럼 그가 평생 지키고 싶어했던 선비정신이 살짝보였다고 하십니다. 이 시를 주정적이라니 순수서정시의 모범이라고 해설하지만 그런 해석들은 이 시의 반쪽만 해설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해석에는 그가 시에 가끔 숨겼다 꺼내놓는 역사의식을 아예 배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지용이 유학가자마자 일어난 관동대지진에서 유언비어로 3일동안 6천여 명의 조선인이 학살된 배경을 생각하면 정지용의 마음은 그냥 고향을 그리워 하는 수준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후렴은 단순한 추임새로 들리지 않습니다. 이 반복은 당시 식민지 조선의 가난한 삶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의 리얼리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윤동주가 구입한 [정지용 시집](시문학사) 1935년에 발행되었고, 그 책을 윤동주는 곧 구입합니다. 윤동주가 갖고 있던 [정지용 시집]을 보면 밑줄 치고 "걸작이다" "열정을 말하다" 등 자신의 느낌도 적어 놓았다. 또한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 교수는 윤동주시인이 [정지용 시집]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예를들면 정지용의 []등에 연필로 간단한 설명을 달아놓았었는데, 요지는 꿈이 아닌 생활이 표현되었기에 좋은 작품이라는 뜻이었다. 정지용의 []을 읽어봅시다.

 

 

말아, 다락 같은 말아

너는 점잔도 하다마는

너는 왜 그리 슬퍼 뵈니?

말아, 사람 편인 말아

검정콩 푸렁콩 주마

이 말은 누가 난 줄도 모르고

밤이면 먼 데 달을 보며 잔다

-정지용 [()]전문, [정지용시집](시문학사, 1935)

 

 

 

                                    

 

 

 

 

 

"이 말은 누가 난 줄도 모르고/밤이면 먼 데 달을 보며 자"기 때문에 말이 슬퍼보인다. 고향을 떠나 먼 경성에 있는 휘문고보 시절을 지내면서 먼 객지에서 어머니 그리는 마음을 한 마리의 말에 응축시켜 놓은 것이 아닐까? 윤동주는 이 점에서 가장 깊이 공감했을 것입니다. 만주에서 태어나 남쪽을 그리워 했으며, 남쪽에 와서는 만주의 어머니와 친구들을 그리워 하고, 또 일본에 가서는 조선인을 그리워 했던 윤동주였습니다. 윤동주야말로 평생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 고향을 찾는 디아스포라의 시인이었습니다. 디아스포라의 그리움과 "생활"로 윤동주는 정지용의 []을 깊이 공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후배 시인 윤동주에게 '정지용''아버지-시인'(father-poet)이었다. 정지용의 독특한 소재나 참신한 표현이나 형식을 윤동주가 그대로 취한 예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별똥 떨어진 곳,

마음에 두었다

다음 날 가 보러,

벼르다 벼르다

이젠 다 자랐소.

-정지용, [별똥]

 

 

다음날 가보겠다며 벼르다 벼르다 보니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는, 시의 화자가 아이에서 성인으로 변하는 독특한 동시입니다. "이젠 다 자랐소"라며 어른 화자가 등장합니다. 바로 이 동시 1연을 그대로 끌어와 윤동주는 [별똥 떨어진 데}라는 산문을 씁니다.

 

 

                                      

 

 

숭실중학교 시절부터 연희전문 시절까지 정지용 시를 읽어 왔던 윤동주는 북아현동 하숙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던 거리에 정지용이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윤동주는 정지용의 집에 들러 시에관한 이야기를 주고 받은 것으로 송우혜님은 [윤동주평전]에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정지용은 해방후 이대교수가 되었고 <경향신문> 주간이 되었습니다. 그후 윤동주를 알리는 일에 몰두했는데 [쉽게 쓰여진 시]1947213<경향신문>지면에 소개합니다. 그리고 시 옆에 자신의 평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시인 윤동주의 유골은 용정 동묘지에 묻히고 그의 비통한 시 십여편은 내게 있다. 지면이 있는대로 연달어 발표하기에 윤군보다도 내가 자랑스럽다. -지용

 

                                      

 

 

 

 

 

김응교 교수님은 짧은 시간이였지만 열정적인 강의를 통해 세 분의 시인을 보다 잘 이해하고 시를 새롭게 해석하고자하는 시선을 가질수 있도록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자작곡을 시와 접목시켜 노래를 만드시고 직접 청중들에게 들려주시며 강사가 아닌 예술인의 풍모로 다가오기도 하였습니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시어 우리의 가슴속에 아름답고도 위대한 시를 전달해주시고 그로인해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 김응교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꽃은 피고 새싹은 올라옵니다. 세상은 봄으로 물들고 우리의 가슴은 사랑으로 물들기를 바라며 강좌스케치를 마칩니다. - 평화시민아카데미 스텝 안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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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790
  • 댓글박미정(2019-03-19 19:56:12)
    교수님께서 해주고 싶은 말은 많았던것 같은데 시간이 부족해서 본인 스스로 아쉬워하셨던 것 같아요. 시 한글자 한글자 읽어주시는데 느낌이 완전히 다르더군요. 학교에서 배울때랑 완전 달라서 시도 재미있구나 생각했던 강연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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