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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분단역사의 현장, DMZ의 빛과 그림자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19-04-11 조회 4927
첨부파일 IMG_1194.JPG[6344993byte] 

평화시민아카데미 '예술로 본 역사의 한 장면'

2-분단역사의 현장, DMZ의 빛과 그림자-

 

강사 : 이시우(사진작가)

일시 : 2019314

장소 : 평화재단 3층 강당

 

<분단체제 현실에서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한 노력>

 

 

                                

 

 

 

 

이시우 작가님은 예술인으로써 단순히 인식되어지기 보다는 분단현실을 타파하기위한 평화운동의 실천가이자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몸소 노동현장에 뛰어들어가신 사회운동가로써 우리들이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은 충남 예산이 고향으로 시골에서 중학 1학년을 마치고 서울로 유학, 1987년 신구전문대 사진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어렵게 농사를 짓던 아버님이 무리를 하며 비싼 카메라를 사주신 것을 지금도 고맙게 여긴다. 하지만 그는 사진 공부보다 시위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는 “6·10항쟁이 내 운명을 바꿨고, 내 삶도 바꿨다고 말합니다. 사진을 찍는 것이 사치스럽다고 생각해 학교를 그만두고 노동현장으로 들어갑니다. 또한 1992년 대선이 끝나고, 이른바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다시 사진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똑딱이 카메라로 나만의 사진을 찍을 자신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사진을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사진작가이지만, 손바닥만한 구형 똑딱이 디지털카메라로 모든 작품을 찍었고 똑딱이 카메라 하나 들고 비무장지대와 민통선을 누볐다고 합니다.

 

 

 

 

                                       

 

 

 

 

 

그때 비무장지대 지뢰 사진을 찍다가 고민한 것이 바로 유엔군사령부의 존재였고 작가님은 공부 끝에 유엔군사령부는 유엔군사참모위원회가 아닌 미 합참의 지휘를 받는 미군이라며 유엔사의 존재는 유엔 결의도 어기고, 또 우리 헌법에도 위배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2007년 그는 이런 주장을 폈다가 북한의 주장과 같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고 경찰의 무단 체포에 항의해 무려 48일간 단식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작가님은 재판을 하면서 유엔사 해체는 한 사진작가의 어설픈 주장이라는 검찰 측 증언을 반박하기 위해서 공부하였고 이 공부의 결과물이 바로 <유엔군사령부>이고 <제주 오키나와 평화기행>입니다. 결국 치열한 재판 끝에 5년 만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잘 속을 때는 사실을 말할때이다. 분단이라는 현실도 사실을 말할때 잘 속는...이러한 역설이 작용하는 공간인거 같습니다."

거짓말, 가짜에 익숙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현실을 이야기하면 잘 안믿어지는 현실을 살아왔다고 작가님은 말씀하십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고 해도 세상은 믿어주지 않고 남북대치국면의 영구적 지속이 자신들의 이권의 한 축이기 때문에 핵 없는 한반도, 군사적 긴장이 없는 한반도는 상상하기 어려운거 같습니다. 안보팔이를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이용해온 남한내의 정치집단과 세계최대 무기수출국인 미국은 한국이란 무기판매시장이 평화라는 이름아래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반도는 그렇게 전쟁의 참혹한 추억을 뒤로하고 거의 70년을 자신과 자국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두 동강이 난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무장지대는 정전협정을 근거로 만들어진것인데 정전협정 제13조에는 정전이 발효된 날로부터 3일이내에 모든 지뢰와 폭발물을 제거하여야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위의 조항은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이것은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입니다. 나아가 이제는 군사분계선에 거대한 철조망까지 설치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철조망은 크게 3단계를 걸쳐서 발전을 하게 되는데 우리가 흔히 볼수 있는 가시철조망은 초기단계의 철조망입니다. 풍금같이 접었다 폈다할수 있는 콘서티아 철조망은중간단계에 발명되었으며 현재는 살이 뜯기는 구조로써 도끼모양을 한 철조망이 발명되었습니다. 비무장지대에는 위의 도끼날철조망을 Y대형태의 구조물에 얻어 설치되어 있는데 이런 모습을 볼때마다 가슴한켠의 살이 뜯겨지는 거 같은 슬픔을 느끼곤 합니다.

 

 

 

 

                                         

 

 

 

 

"철조망이 만들어 진것은 처음부터 불법이였고 지금도 그렇다. 굉장한 저항속에서 만들어진 철조망이 이제는 당연한 것처럼 비춰지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가 비무장지대에 철조망이 원래부터 설치되어있는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사실 철조망은 베트남전쟁이후에 파주, 문산의 미군기지 주변을 시작으로 설치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968121일 김신조부대가 청와대 기습침투를 시도한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철조망이 없는지역이 아닌 미군이 철조망을 설치한 지역을 경로로 하여 침투하였습니다. 일종의 철조망을 새로 설치한 지역을 시위라도 하듯 내려온것입니다. 그 뒤 북한에도 철조망이 설치되기 시작합니다. 박정희는 청와대 침투사건이후 미국에게 전쟁대비상태로 전개하려고 미국에 건의하였지만 미국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트레블로호 나포사건때는 바로 전쟁대비상태로 진입하는 결정을 하였는데 박정희는 여기서 미국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되어 핵을 개발하고자 하는 의욕을 가지게 됩니다. 김신조사건이후 남쪽 155마일 전지역에 철조망을 설치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모든 물자를 미국이 지원한다는 결정아래 철조망이 설치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서부전선과는 달리 동부전선은 산악지형이여서 많은 군인들이 고통속에서 작업을 하여야 했고 일부군인은 남북대치국면을넘어 철조망까지 설치되는 모습에서 좌절감을 느껴 월북하는 사례도 발생하였다고 합니다. 철조망이 처음부터 만들어진것도 불법이고 굉장한 저항속에서 만들어진것임에도 불구하고 분단은 이것을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처럼 만들어 버렸습니다. 불법과 위법이 정상화처럼 보이게 된것입니다.

 

 

 

 

                                         

 

 

 

 

"우리는 북측을 우리의 영토로 인식하고 통일이후에 당연히 우리가 흡수해야할 영역으로 인식하지만 실제로 이속에는 여러문제가 함축되어있다"

 

혈맹우방으로써 미국을 인식하고 있지만 주권의 측면에서 보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의 권리가 38선 이북지역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과거 우리나라 어떠한 정부도 미국에 문제제기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남북경제협력차원에서 철도개설등을 위하여 북으로 넘어가겠다고 하더라도 유엔군사령부의 허가 없이는 첫삽도 뜰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2000년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에서도 경제협력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한 것도 이러한 문제가 깔려있습니다. 겨우 경의선과 동해선의 일부구간만 한국이 관리할수 있도록 합의를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도 군사분계선을 넘는것은 유엔사령관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유엔사령부가 주장하여 제약을 가해게 되는데 그 주장의 요지는 대한민국 정부는 단지 관리권-사용권만 행사할수 있고 관할권-소유권은 유엔군사령관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을 하게됩니다.

 

우리가 북측을 방문하려고 하면 통일부-국방부-유엔군사령부에 순차적으로 보고가 되고 최종적으로 유엔사령부에서 허가가 나야만 북한을 방문할 수 있게 됩니다. 나아가 방북결정이 나더라도 현장에서 유엔군사령군은 북한방문을 현장에서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있고 실제로도 그런 사례가 일어난 경우가 있습니다. 비무장지대에 우리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것은 큰 문제입니다. 비무장지대 GP에 미군은 단 한명도 근무하고 있지 않지만 유엔군기가 걸려있음으로 해서 모든 법적권리를 유엔사령부가 행사하고 있습니다.

 

 

 

                                          

 

 

"유엔군사령부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유엔군사령부 문제를 우리가 평화롭게 해결하지 않으면 통일과정 뿐만 아니라 통일이 되더라고 문제가 발생합니다. 촛불혁명으로 이룩한 민주정부는 하루빨리 이 부분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여야지만 남북평화협정체제의 실마리를 풀어낼수 있을것입니다.

 

이시우 작가님은 첫인상이 단단한 조약돌과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긴 세월동안 노동현장과 비무장지대를 전전하면서 한국이 당면한 시대적 요구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살아오신 인생이 연세가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사적 풍모를 들어내시고 있는거 같습니다. 철조망사이를 부드러운 손길처럼 뻗어나가는 풀잎과 이름모를 들꽃은 한민족의 역사적 상처를 치료해주는 신의 보살핌처럼 느껴졌습니다. 지뢰밭사이를 조심스럽게 다니며 몸소 분단의 긴장감을 느껴며 담아낸 사진 한장한장은 단지 눈으로 보여지는 걸 넘어 가슴으로 현재의 남북분단의 슬픔을 말씀하고자 하신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평화..통일..우리가 앞으로 걸어가야할 길이 오롯이 우리만의 영역으로 이해할것이 아니라 거대 강대국들의 자국이기주의가 깔려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냉철이 사안에 대한 해결점을 찾아야 되지 않겠나하는 점을 느낄수 있는 좋은 시간이였던거 같습니다. 통일의 그 날에 긴 수염을 휘날리며 큰 웃음을 짓는 이시우작가님을 빨리 뵙기를 희망하며 강좌스케치를 마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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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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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박미정(2019-04-12 12:46:41)
    2회 강연도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단체사진 왜이리 흔들린겁니꽈? ^^ ㅎㅎ 강연때가 생각나네요^^ 바른 역사를 잘 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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