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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자료실

한반도 통일 비전과 정책을 생산하는 평화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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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립17주년 심포지엄 발표요약] K-국가모델의 비전과 차기 정부의 평화선도전략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1-11-22 조회 48046
키워드
첨부파일 평화재단 2021년 하반기 심포지엄 내용정리.pdf[259308by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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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표 1 대전환의 시대, 대한민국의 국가모델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저는 네 가지의 카테고리로 지금 세계의 문제를 나눠봤다. 국제질서의 변화, 현대 위험 사회, “연성의 시대로 변화의 가능성, 마지막으로 자본주의의 위기다.

첫 번째 탈냉전 이후에 국제질서의 변화 양상이다. 과거에 소련 미국을 중심으로 양극 체제의 냉전시대가 무너지면서 미국 중심의 단극화라고 하는 아주 짧은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전 세계 질서를 부담하는 건 사실 가능하지도 않고 부담이 되기에 미국의 국력이 상대적으로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포션은 줄어들었다. 중국과 EU가 커지면서 극이 다극화하는 경향들이 발생하는게 현대 국제질서다.

문제는 다극화를 넘어 무극화로 간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미국과 소련이 각자의 진영의 질서를 관리하는 역할을 했으나, 이게 무너지면서 책임을 지는 나라들이 없어졌다. 여기에 진공 상태가 발생을 했다. 유고 내전,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또 러시아 조지아 간의 전쟁부터 시작해서 새롭게 눌려있던 분쟁들이 계속해서 부상하고 테러 등 새로운 안보 위협 등 갈등이 더 줄어드는 게 아니라 더 늘어났다. 강대국은 책임을 회피하고 국제기구는 무능력한 무극화의 시대로 지금 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두 번째, 울리히 벡은 현대문명이 발전하면서 편리와 편익이 커졌지만 그로 인해서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위험이 새로 생기는 것을 지적했다.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 부자든 빈자든 기후변화, 팬데믹, 원전 재난은 동일하게 나타난다. 저는 AI와 빅데이터도 거대한 두려움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이런 위험들이 전 세계적으로 연결돼 있다. 위험으로 초연결된 사회가 현재라고 판단하고 있다.

세번째는 위기의 자본주의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서로를 비추면서 체제 경쟁을 하면서 경쟁을 해왔다. 자본의 야만성을 성찰할 수 있는 거울이 사회주의였다. 어느 날 사회주의라는 거울이 사라져 깨져버리면서 자본주의가 흉측한 자기 모습을 비출 거울이 사라져버렸다. 중산층이 해체되고 양극화가 심화되고 실업이 증가했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같은 기업들의 특징이 뭐냐 하면 과거에 제조업이 담당했던 일자리의 3분의 1 정도만 창출하고, 세금 기여도나 일자리에서. 아마존의 한 사람이 과거에 오프라인의 상점에 10명의 일을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풍요로움을 느끼지만 점점 일자리가 줄어들고 이로 인한 양극화와 부의 편중이 심화됐다. 트럼피즘이 탄생한 배경도 미국 백인 중산층이 하층으로 이동을 강요당하면서 느끼는 좌절감, 그리고 바이든이 집권하자마자 중산층을 위한 외교를 외치는 이유도 바로 뿌리는 자본주의 위기다.

마지막으로 저는 연성 시대라는 개념을 만들어봤다. 과거가 경성의 시대, 즉 영토, 인구, 군사력, 굴뚝산업, 점진적인 변화의 시대라고 한다면 지금은 창의력, 소프트웨어, 변화에 대한 적응력, 문화적 창조력이 지배하는 사회다. 어떤 선진국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원천기술로 경쟁력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지구상에서 한국이나 대만처럼 이런 중소국이 세계 경제를 좌우할 만한 반도체 산업이 거의 80%를 좌우할 수 있었던 그런 영향력을 가진 시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살펴본다면은 동아시아 패러독스다. 유럽은 1, 2차 세계대전에서 거의 1억 명을 서로 죽였던 사람들이 지금은 EU라고 하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덕분에 지금 유럽에는 그 어떠한 안보적 거대한 충돌의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반도와 동아시아는 다르다. 한반도는 두 개의 전쟁이 미완으로 끝났다. 하나는 동아시아 샌프란시스코 체제다. 패전국 일본이 미국의 동맹국이 되어버리는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통해 일본은 이제 패전국이 아니라 승전국의 편에 서서 동맹이 돼버렸다. 물론 그 대상은 소련과 중국이었다. 이렇게 미일 동맹이 탄생했다. 이에 따라 유럽의 뉘른베르크 재판과 같은 철저한 과거사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어 태평양 전쟁이 미완으로 끝났다. 독도 문제, 센카쿠열도, 동중국해 남중국해 같은 과거의 문제들이 해결이 안 된 것도 바로 패전국 일본이 미일 동맹 체제가 되면서다.

두 번째 미완의 전쟁은 한국 전쟁이다. 한국 전쟁은 정전 체제로 끝났다. 결과적으로는 탈 냉전에 따라서 유럽은 소련이라는 위협이 사라지면서 통합의 역사를 써가는데, 여기서는 미중 경쟁으로 출발했던 한국전쟁도 희생은 한민족이 당했던 것이 냉전기에도 지속이 됐고 문제는 냉전이 해체된 이후에 동아시아 패러독스로 미중 전략경쟁으로 계속 충돌 양상을 이어가고 있고 그리고 그 여파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수없이 많은 한중일 간의 아시아 패러독스가 발생을 하고 있다.

우리는 분단 체제의 발전 국가다. 한국은 선진국에 진입했지만 슬픈 성공이다. 일상의 불안과 OECD 최고 자살률, 이혼율, 최저 출생률, 사실상 최고의 갈등 사회다. 이것이 분단 체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앞으로의 국가 모델로 제안하는 첫 번째는 평화 국가다. 우리가 지금 가장 절실한 게 평화다. 한반도를 항구적 평화지대로 만들어야 한다. 남북과 미중 전략경쟁이 충돌하는 지점이 바로 한반도다. 한반도의 평화지대화를 달성하고 한반도의 비핵화가 만들어지면, 이것을 일본의 비핵지대와 한일 비핵지대, 동남아 비핵지대와 연결하고, 그 다음에 중앙아시아, 그리고 각 지역의 비핵지대 조약들과 연계하면 우리가 비핵 안보레짐을 이끌어갈 수 있을 거다.

두 번째는 행복 국가다. 우리 발전은 체제 경쟁에서 승리가 목표였지 행복이 목표는 아니었다. 행복한 발전, 포용적 발전, 공정의 회복 이런 걸 중심으로 행복 국가가 돼야 될 것 같다.

다음으로 연성 강국을 지향해야 된다. 지금 한류는 엔터테인먼트 쪽이 중심이지만 우리가 평화와 생명 같은 가치들을 융합한 연성 시대의 연성 강국이 되어야 한다. 물론 여기에 첨단 기술력과 문화력 두 개가 양대 축이 될 것이다. 이걸 만드는 게 바로 창조성이고, 이것은 교육 제도까지 근본적으로 개혁이 필요하다.

그 다음이 생명 국가다. 기후변화, 팬데믹, 환경오염, 원자력 이런 모든 것들이 생명의 가치를 위협한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여 현대 위험을 극복하는 지향성을 가진 국가가 되어야 한다. 그 다음이 포용 국가다. 우리가 포용성이 너무 작다.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포용성을 문재인 정부에서 조금 노력했지만 상당히 많은 한계가 있다고 본다. 남북 간의 포용, 또 국제적 공헌과 기여를 하는 포용국가의 지향성을 가져야 되겠다.

마지막으로 세계 국가다. 우리는 세계국가라는 얘기를 해본 적이 없고 언제나 변방이었다. 언제나 북한 문제와 한반도를 중심으로 외교를 했다. 확대해봐도 동북아, 신남방, 신북방, 유라시아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 국가다. 그러니까 세계를 경영하고 공헌하고 기여하는 세계 국가의 관점에서 국가 전략을 도모해야 한다.

 

인류 문명에는 정신문명이 전환하는 두 개의 거대한 축의 시대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1차 축의 시대는 기원전 2세기에서 8세기까지다. 이 시대는 부처, 공자, 예레미아,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사람들이 살던 시기다. 이 이전의 시기는 신화적, 부족적 특수주의의 세계였고 세계 종교가 없었다. 신화적, 부족적 상대주의 세계에서 종교적 합리성의 세계로 넘어오고 드디어 세계를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철학, 종교 체계가 나타나는 게 바로 1차 축의 시대다. 이 때는 발생론적 기원이 다 다르다.

두 번째 축의 시대는 바로 근대다. 르네상스에서부터 시작된 이 근대 모던 타임즈다. 종교에서 벗어나서 드디어 인간의 이성이 독립하는 시기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인간이 지배하는 시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1차 축의 시대는 발생 기원이 다 다른데 2차 축의 시대는 바로 서구에서 기원을 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근대화의 뿌리는 서구 하나라는 착각을 하게 됐다.

그러나 서구에서 시작된 산불이 전체로 번졌을 뿐이지 아시아나 아프리카나 그 어디서도 근대라는 산불은 번질 수 있었다. 근대성은 하나이되 근대성의 조합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저는 이 팬데믹과 트럼프 현상에서 서구적 개인주의적 합리성의 위기를 본다. 동시에 아시아적 공동체적 합리성의 가능성을 봤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2차 축의 시대와 아시아적 근대성의 조합을 분명히 한국이 주도할 수 있다고 본다. 그걸 지금 우리 눈앞에 보여주고 있다. 경제력, 문화력, 민주주의. 우리가 많이 실망하지만 전 민주주의도 상당히 상대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보고 이 나라의 미래도 밝다고 본다.

지금까지 우리는 선진국을 쫓아가는 Fast Follower였다. 근데 이제는 여러 가능성 속에서 한국이 추격국가가 아닌 선도국가가 될 수 있다는 걸 우리 스스로 깨닫고 있다. 포용적 발전, 행복의 추구, 생명, 연성국가, 이런 모든 것들이 포용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성찰적인 한반도 통일을 해야 한다. 통일이라는 게 결국 성공한 국가가 성공한 체제가 실패한 체제를 통합하는 게 아니고, 분단 체제의 비정상성을 극복하는 자기완성의 길이 돼야 한다. 따라서 통일은 남북 어느 한쪽의 주도가 아니라 미래의 이상적인 지향점을 정해놓고 남북 양쪽이 스스로 분단의 비정상성을 극복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

 

 

발표 2 차기정부의 평화선도 전략 : ‘광장국가중도외교를 위한 인문적 전환

남기정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교수)

 

 

오늘 제가 드릴 말씀은 두 가지 키워드로 구성돼 있다. “광장국가그리고 중도외교라는 개념이다. 광장국가의 중도외교를 제안하는 것이고, 그 인문적 전환의 가능성을 검토하고자 하는 것이 제 오늘 발제의 주 내용이다.

 

해방으로 한민족은 광장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 광장은 곧 텅 비게 되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났다. 밀실은 지하로 내려갔고 광장은 전장이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국가가 만들어졌다. 전장국가의 탄생이다. 정전으로 전장은 광장의 모습을 되찾았지만 그곳은 병사들의 광장일 뿐이었다. 개인들의 밀실은 광장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시민들은 골목에서 서성일 뿐이었다.

1987년 그리고 2017, 광장이 두 번 열렸다. 전장 국가는 광장국가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1988년 제1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포용 정책 1.0이라고도 하는 과정이, 2018년 제2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이는 포용 정책 2.0이라고도 하는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두 차례 진행되었다. 그러나 22019년 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감속하고 중단되었다.

코로나19로 시민은 밀실에 들어가 개인이 되었고 광장은 다시 텅 비었다. 어느 날 한국은 눈 떠보니 선진국이 되어 있었다. 선진국 회의라고 불리는 G7 회의에도 초청받았고. 10대 민주국가, 10대 기술 강국의 책임을 자임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전쟁 국가에 살고 있다. 미생과 오징어 게임이 드러내는 현실이 그것이다. 이윽고는 삶의 터전마저 죽이는데 앞장서는 기후 악당 국가가 되어 있었다. 전쟁의 현실을 전제로 태어난 전장 국가는 내부적으로도 전장 국가이고. 그것은 복지제로 국가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광장을 다시 열어 광장국가가 되어야 한다. 광장은 사람과 생각 정보와 물산이 모여들었다가 다시 퍼져나가는 공간이다. 광장으로 모여 들어온 모든 것들은 서로 어울리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이는 세계를 돌고 돌아 다시 광장으로 모여들어 언제나 활기 넘치는 공간으로 광장을 재생한다. 세계의 지식과 부가 창출되는 광장은 모든 이의 공공재가 되어서 누구에게나 소중한 공간이 된다.

그 순환의 과정이 다름 아닌 평화 프로세스다. 우리는 이제 교량 국가에서 나아가 광장국가가 되어야 한다. 높고 낮음이 없고 막힘도 닫힘도 없는 평평하고 열린 공간을 세계 정치와 교육의 광장으로 내어주어 민주적 국제질서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데 기여하는 것, 그것이 중견국으로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외교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대중 철학가인 아즈마 히로키는 시민이 시민사회에 머무르면서 개인이 개인의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그대로 공공과 보편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회로, 그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서 관광객을 주목했다. 이는 내셔널리즘에 속박된 주민도 아니고 글로벌리즘으로 떠나가 버리는 코스모폴리탄, 또는 떠돌이도 아닌 존재로서, 내셔널리즘의 틀 안에 머물면서도 지구를 파악할 줄 아는 존재다. 광장국가는 이들 관광객을 수용해서 2층 구조의 해체와 새로운 질서 구축의 근거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광장국가는 우리 안의 세계를 품는 외교를 전략으로 삼는다.

세계에 코리아의 이름을 알린 고려의 평화가 광장국가의 외교다. 고려의 평화는 여요 전쟁의 승리로 이룬 것이었다. 거란의 총공세를 물리치면서 국가의 강도(强度)가 확인되었고 고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후 고려는 송 · 요와 함께 동아시아 3국 체제를 만들어서 100년의 평화질서를 이끌어갔다. 균여의 성상융회 사상이 그 이념이 되었다. 균여는 공마저도 융합의 대상으로 보고 공을 뜻하는 성과 색을 뜻하는 상을 원만하게 융합시켜 성상융회 사상으로 나아갔다. 이는 대립을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으로서 통합의 사상이었다. 또한 고려 사회는 다양한 이치와 원리로서 모든 것을 꿰뚫는 이른바 다이관지의 원리로 운영되는 사회였다. 이러한 다양성과 개방성을 기초로 고려는 세 차례 거란의 침입을 물리친 이후 활발한 통상으로 외부 세계에 스스로 문을 열고 문화의 중심 국가라는 자존의식을 갖게 되었다, 고려는 이른바 동아시아 최초의 중견국이었다.

 

 

이후 조선의 유교 정치의 이상과 동학사상에서, 그리고 식민지 지배하에서도 안재홍과 김구의 국가 구상에서 중견국 지향의 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 한반도의 삶이 만든 사상적인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중견국은 내부 파열을 견디면서 외부 충격에도 부서지지 않는 적정 수준의 강도를 갖춘 국가를 말한다. 대체로 소국은 외부 충격에 의해서 파괴되어 사라지고 제국은 내부 파열로 무너져 사라졌다. 중견국은 외부 충격에 견딜 정도의 크기로 몸집을 불려서 적정 규모를 달성한 상태이고 내부 파열을 일으키지 않을 정도의 크기로 몸집을 줄여서 적정 규모를 달성한 상태 국가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중견국은 더 나아갈 여지를 남기고 머물러 있는 중진국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벽한 목표를 구현한 국가다. 또한 중견국은 강대국 사이에 낀 중간국이 아니라 세계 정치의 중원에서 중심에 자리 잡고 중점 또는 핵심 이슈를 파악하여 중추 역할을 하는 국가다. 중견국은 중동태 국가이기도 하다. 중동태란 능동과 피동에 중간에 위치하는 태를 말한다. 이 중동태의 사상을 국제정치의 원형에서 우리는 능동과 수동의 밖에서는 존재로서 중동태 국가를 상정할 수 있다. 중동태 국가는 선진국/후진국, 강대국/약소국의 이항 대립을 넘는 존재로서 중도의 국가이며 미중 전략 경쟁의 외부를 조직하는 국가로 존재할 수 있다. 광장국가로서 중견국의 외교 전략으로 중용의 외교와 중도의 외교를 구상할 필요가 있다.

유교에서 말하는 중용은 양극이 아닌 다양한 중간의 상태이며 그 가운데서 적절하게 선택하는 작위적인 실천이다. 이러한 실천이 시중이다. 나아가 중용의 사상가 최상용에 따르면 시중적 사고는 저울질과 균형을 의미하는 권()의 개념과 함께 쓰여 중용 개념의 일상화와 정치화를 촉구했다. 그래서 중용의 도를 선택한다는 것은 저울추를 안정시키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중견국 외교의 실천은 중용이며 그 사유의 기초는 중도가 존재적 상태라는 깨달음에서 마련된다. 중용과 중도의 차이는 가운데에 있고 없음이다. 중용은 양 극단 사이에 있는 데 비해서 중도는 극단보다 더 먼 곳으로 사라진다. 중도는 모든 이항 대립의 양 극단을 떠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도는 중용이 아니다. 중도의 사고는 양극단뿐만 아니라 가운데에도 집착하지 않고 양변이 없기 때문에 가운데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중도는 중간에 균형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에 달라붙은 균형을 깨고 양변보다 더 먼 극단으로 밀고 가는 것이며 그 틀 자체를 파괴해서 변혁하는 것이다. 백낙청과 정현곤이 주장하는 변혁적 중도가 불교의 중도에 기초한 전략이었다.

여기에서 중도란 유와 무의 두 극단을 아울러 넘어선 공의 경지를 말하며 탐진치 삼독심을 극복한 상태를 말한다. 백낙청은 참된 중도가 나에 대한 집착을 그대로 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법이 다 빈 자리이며 일상생활에서의 탐진치를 여읜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로부터 백낙청은 탐진치를 일으키는 사회 체제 운영 원리로서 자본주의 비판으로 나아간다. 자본주의는 탐심을 긍정하여 사회 발전의 동력으로 삼고, 진심을 자본주의의 경쟁 원리로 작동시키며, 치심에 스며들어 자본주의가 유일무이의 체제라고 믿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백낙청의 중도주의는 탐진치를 기본 동력으로 삼은 자본주의 체제 비판의 입장을 의미한다.

욕심내는 마음, 성내고 미워하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의 탐진치는 투키디데스가 전쟁 원인으로 지목한 이익, 명예심, 공포심과 정확히 일치한다. 투키디데스는 전쟁 원인으로 공포심에 주목했으며 여기에 이익과 명예심이 결합되어 있어서 이 세 가지 요인의 조합으로 전쟁 발발의 근본적 동기들을 설명했다.

도미니크 모이시도 탐진치를 국제정치에 원용했다. 모이시는 감정의 정치에서 감정이 세계적 갈등을 이해하는 데 열쇠가 된다고 하면서 희망, 굴욕, 두려움으로 세계의 감정 지도를 그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희망은 자신감을 내포하는 개념이고 탐의 순한 표현이다. 굴욕은 무력감을 나타내며 화냄의 근원이 된다. 공포는 어리석음의 원인이다. 이를 정식화하고 모이시는 윤리학과 지정학의 조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모이시는 지정학에 머물러 있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이제 우리는 중도를 실천하기 위해 지정학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해야 한다. 지정학으로부터 지질학으로 환승하여 지질-시정학을 정립하고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통찰을 구하는 길에 나설 때가 되었다. 불교의 관점에서 자연은 법성을 본성의 원리로 하고 법계를 전체의 범위로 하며 우주의 모든 존재자가 서로 의지하고 연기에 의해 생성되는 한 생명의 큰 바다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에 반해 지정학은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고 인간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정식화한 유사 학문이었다. 지정학이 공간의 왜곡이라면 지질학은 시간의 학문이다. 지질학은 억겁의 시간 개념 속에서 지구와 그 위에 존재하는 또는 존재했던 모든 생명체의 역사를 추적하는 학문이다.

우리는 지금 인류세에 살고 있다. 인류가 지구를 본격적으로 파괴한 100년 안팎의 시간이 인류세를 다루는 지질학의 연구 대상이다. 특히 1950년대를 기점으로 가파른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고 이를 거대한 가속이라고 부른다. 지구가 2도 더 뜨거워지는 경우 1.5도 뜨거워졌을 때보다 대기오염으로 사망하는 사람만 약 15천만 명 더 늘어난다고 한다. 이는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25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미 대기 오염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매년 700만 명씩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궁극의 목표로 설정해야 하는 일은 기후 평화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감속과 가속이다. 감속 노선은 자본주의적 가속 기계를 멈추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제시한다. 그렇다고 연계 자체를 끊는 것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적절한 처방은 긴밀한 연계를 느슨한 연계로 바꾸는 것이다. 지구화의 길에서 지역화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공간을 재편하는 것으로서 지구화의 속도를 늦춰보자는 것이었다. 그 가부는 우리가 한 사람처럼, 행성처럼 생각하는 책임을 받아들이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이번 COP26의 결과를 보면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인류가 기후 변곡점을 맞는 시간은 7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감속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인류가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 함께 노력하지 못한다면 남는 것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해 누군가가 노력하는 길이다.

자본주의 시계는 쉽게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이에 대한 대응으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것이 경과를 가속화하라는 일체의 명령을 실행하는 가속주의 정치선언이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그 실천이다. 프랑스의 포스트모던 철학자 폴 비릴리오에 따르면 속도야말로 일정한 영역을 지배하는 정치 권력과 불가분의 요소로서 정치 권력을 파악하는 데 핵심 주제가 된다. 서구인들이 맹렬히 추진한 지구화의 결과 거리의 단축은 전략적 현실이 되었고 지정학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제 전쟁은 전장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속도가 전쟁이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는 공간 전쟁의 계엄령으로부터 시간 전쟁의 긴급 사태로 진입했다고 한다.

들뢰즈는 시간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아이온의 시간 크로노스의 시간이다. 아이온의 시간은 쉽게 말하면 들숨 날숨에 집중할 때 느껴지는 영원한 시간이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10분의 명상과 같이 시작과 끝이 있는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국제정치는 아나키 상태에 있기 때문에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설파했다. 그러나 우리가 아이온과 크로노스의 시간이 있다고 하는 것을 이해하면 아나키와 카오스를 구분할 수 있다. 이로써 우리는 아나키의 국제정치에서 카오스의 국제정치로 뛰어넘을 수가 있다. 아나키는 무정부상태가 영원불변하게 지속되는 것이지만, 카오스는 철학과 예술과 같은 방법으로 극복되는 것이며 질서가 창출될 가능성을 열어준다.

삶정치라는 개념이 있다. 생명 또는 삶에서 비오스(bios)와 조에(zoe)를 구분할 수 있다. 비오스로서의 생명은 존중받아야 할 생명과 그렇지 못한 생명을 구분한다. 인간의 삶을 존중한다는 것도 비오스의 평면 위에 있다. 코로나19라고 하는 것은 비오스로서의 생명을 구분하지 않았으며, 그런 의미에서 생명정치가 만들어 놓은 막다른 골목을 확인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우리는 조에의 공간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가 조에의 정치, 즉 삶정치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줬다. 그동안 우리가 비오스의 정치에 속박 당해서 지정학을 운영해 왔다고 한다면, 생명에 서열을 매기는 아이덴티티를 뛰어넘는 조에 정치로 나아감으로써 지정학이 판타지였음을 확인하는 지평으로 나아갈 수 있다.

 

 

중도외교의 실천 영역은 우리가 두 발로 딛고 서는 곳에 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한일 화해프로세스다. 청일전쟁 이후 지난 120년 동안 한반도에서의 삶은 줄곧 전쟁과의 대결이었다. 지정학이 만들어 놓은 전쟁이었다. 그리고 정전이라는 이름으로 계속되는 한국전쟁은 청일전쟁으로 왜곡된 근대화의 과제와 러일전쟁으로 시작된 식민지 지배 극복의 과제를 둘러싸고 근대국가 프로젝트가 분열되고 그것이 연합국의 분할 점령이라는 지리적 환경을 매개로 해서 군사적 충돌로 이어진 결과였다.

이를 극복하는 일이 한편으로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한일 화해프로세스다. 그래서 이 두 가지 과정은 불가분의 지점, 또는 시점에서 진행되어야 할 사안이다. 이는 한말 근대국가 프로젝트가 근대화 프로젝트와 자주화 프로젝트로 분열된 데 따른 것이다. 이후 이를 통합하는 시점과 전략은 여간해서 나타나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2018년 이후 추진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한일 화해프로세스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결과 실패했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다리는 것처럼 바보 같은 일은 없다.

이제 이 두 과제가 하나의 과제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중도의 사유 체계로 가능해진다. 코로나19 이후 중견국 멘탈리티를 획득한 한국에서 수행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나아가 지정학에서 지질-시정학으로의 전환이라는 맥락에서 보아도 한일관계는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전후 평화주의 하에서 그 어느 국가보다도 먼저 지정학에서 시정학으로의 변화를 시도했었다고 저는 평가한다. 지질학적 사고에도 익숙해서 성숙 인류세로의 전환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 높다. 일본이 1970년대에 세계에서 가장 먼저 성숙국가로 진입한 국가라는 분석도 있다. 이를 배경으로 지방 여성 청소년이 한일관계 대전환의 전선으로 주목받고 있다. 모두 삶정치와 지질-시정학의 영역들이다.

루소는 신이 인간에 부여한 두 본능이 자기애와 타자애라고 생각했다. 자기애와 연민, 또는 타자애로서의 조국애가 공존하고 우주적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조건이 소국이었다. 대국에서는 현실적으로 타자에 대한 동정이 조국애로까지 확대되기 어렵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루소는 평화의 조건을 소국 연합에서 찾았다. 우리가 소국 연합을 시도할 때, 가장 가까운 대상이 일본이다. 한국이 중도외교의 상상력으로 한일 화해프로세스를 개시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여 광장국가로 거듭나 인류를 성숙 인류세로 인도해 나가는 것. 이를 차기 정부의 평화 선도 전략으로 제안한다.

 

 

토론 1 포용과 중용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병진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한국은 대선 시즌이다. 대선 후보들이 외교 안보에 관해서는 약간 중도 실용주의로 포지션이 이동하고 있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 뉴욕타임스 편집장과 동아태 차관보 등이 한국에 와 대선 후보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미국에서는 현재 한국 대선에 상당히 관심이 있다. 물론 실용주의적으로 변화되는 것들은 좋게 볼 수 있겠지만 저는 여전히 회의감이 상당하다. 정치도 그렇고 경영도 그렇고 가장 중요한 건 그 근저에 담긴 있는 사유체계다. 우리 한국은 전통적으로 유구한 철학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도 사유는 마치 대학의 일부 철학과에서만 하는 거라고 오해한다. 그런데 미국의 탁월한 경영학자들이 왜 아주 추상적인 개념, 철학, 가치를 실용적인 측면에서 중시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 있다. 저는 그런 점에서 오늘 두 분이 기본적인 가치와 사유 부분에 대해서 화두를 던졌다고 생각한다.

 

조한범 박사님은 포용이라고 하는 화두를 던지셨고 남 교수님은 중도라고 하는 화두를 던지셨다. 지난 대선 때 제가 어느 강연장에서 대선 후보들에게 우리가 한번 하벨을 되살려보자는 얘기를 드렸던 적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하벨 대통령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분들은 깊이 있는 철학적 의미의 중도에 대한 깊은 사유를 고민했던 분들이다. 하벨과 김대중 대통령은 이미 오래전에 생명 민주주의와 생태민주주의 그리고 통합적 민주주의라는 화두를 앞서가셨던 분이다. 그리고 하벨과 고르바초프는 부다페스트 클럽이라고 하는 단체의 멤버였는데 오늘 두 발표자 분의 포용과 중도의 철학은 마치 부다페스트 클럽의 21세기 부활을 요구하는 목소리 같이 들린다.

 

 

사실은 문재인 대통령께서 국제 외교 활동을 하시면서 해외의 이미 오래된 화두인 포용적 민주주의(Inclusive Democracy) 담론을 보고서 대통령께서 놀라신 적이 있다. 왜 우리는 이런 화두가 안 되는가? 그래서 사실 혁신적 포용국가에서 포용 민주주의 파트는 대통령의 화두가 녹아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 문재인 행정부는 상당히 많은 성취를 이뤘지만 또 포용 민주주의에서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한계가 왜 생겼을까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유를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 사유 체계라는 점에서 깊이 있는 고민까지 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 정국에서 어떻게 하면 20 30대의 마음을 잡을 것인가의 아젠다 이전에 마치 대학 교수들의 논쟁 같은 부분인 사유 체계에 대한 부분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까 말씀 중에 성찰의 거울 얘기를 하셨는데 미국의 자유주의는 사회주의와 결합했기 때문에 역동성을 얻었다. 그러나 미국의 자유주의가 사회주의를 잊어버린 순간 타락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다시 그 고민을 해야 한다. 물론 제가 미국 전문가로서 미국의 자유주의를 높이 평가하고 대한민국이 자유주의를 심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으나 미국의 자유주의에 굉장히 한계가 많다. 타자를 지배하는 철학이기도 했고 애초의 출발이 소유적 개인주의의 철학이기 때문에 미국의 자유주의는 다양한 문명으로부터 이제 다시 영감을 얻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의 문명이 우월한가. 전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의 비자유주의에 대해서 저는 굉장히 우려합니다. 중국에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결합하려고 했던 훌륭한 시도들이 오늘날 잊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한계가 많은 자유주의 그리고 중국에 더 한계가 많은 시진핑 사상은 어쩌면 두 분이 이야기한 것처럼 대한민국이 포용과 중도를 통해서 이 두 나라를 견인할 수 있는 충분한 질서 형성자로서의 위치가 왔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이미 충분히 그것에 왔는데 그것에 맞는 대선 토론을 하고 있지 못하고 그것에 맞는 우리의 외교안보 노선을 못 만들고 있다. 저는 전략적 모호성이라고 하는 게 일부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근저에 있는 철학 체계는 대단히 한계가 있다.

 

모든 나라의 국가 전략에서 국내의 철학과 외교안보의 철학은 같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걸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과거 미국 냉전 시절의 리버럴들은 그걸 이해했기 때문에 미국의 잔인한 인종주의를 벗어나고자 민권법을 통과시켰던 것도 소비에트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는 동력이 컸다, 바이든도 중국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미국 내부의 훨씬 더 인종적 그리고 마이너리티의 평등이 중요하다는 걸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중산층에 대한 인프라 법안과 사회복지 법안을 하고 있다. 근데 우리는 과연 그런가. 제가 참 안타까운 게 많은 한국의 제도권 정치가들이 국내 시민의 동등성을 위한 법안과 아젠다들이 국제외교에 있어서 우리의 훌륭한 정치자본이 된다는 걸 놓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국내 정책과 외교안보 정책을 통합할 수 있는 철학과 아젠다가 만들어져야 한다.

 

많은 정치학자, 사회학자들이 얘기하는 내각제냐 대통령제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시민들이 얼마나 일관되게 오랜 시간 동안 치열하게 어떤 아젠다를 가지고 압박하는가이다. 물론 유럽의 내각제가 미국의 대통령제보다는 조금은 더 기후위기나 이런 점에서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라고 본다. 그 점에서 과연 우리 시민사회가 충분히 그러한 정도의 일관된 헌신을 기후위기나 불평등에서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가 이번 대선에서 사실은 제도권 정치권에서 요구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번 대선 정국과 대선이 끝나고 나서도 가치 논쟁을 본격적으로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평화재단이 한 번 그 플랫폼을 한번 깔아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두 발제자께서 이러한 내면의 사유 체계를 전환하기 위해서 한국 사회, 특히 제도권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무엇으로부터 시작해야 되는지에 대한 말씀을 해주시면 고맙겠다. 그리고 기후라는 걸 매개로 우리가 어떻게 대한민국 전환의 실마리를 그리고 미중 관계 전환의 실마리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 이야기를 해 주셨으면 좋겠다.

 

 

토론 2 K 국가모델 전략

황재호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저는 전공이 국제 정치이기 때문에 국가 전략 쪽에서 접근해 볼까 한다. 먼저 국제질서를 보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영국이 2016년에 탈퇴를 확정하고 20201월에는 이제 EU로부터 정식 탈퇴한 영국의 브렉시트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2차 대전 이후에 수립된 국제질서는 미국의 리더십 아래 크게 대서양하고 태평양 두 축으로 움직여 왔다고 생각한다. 굳건해 보였던 미국 주도의 질서가 균열했는데 이것이 외부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이제 내부로부터 온 것이다. 영국은 경제적 부담하고 난민 문제로 더 이상 미국의 대리인이 되기를 거부한 것이다. 저는 미국의 또 다른 축 태평양에서도 현 질서의 탈퇴 움직임, ‘엑시트(Exit)’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먼저 히스토리 엑시트다, 일본이 탈취했던 그 지역 일체를 반환하기로 한 1944년 카이로 선언을 포함한 역사적 합의가 잘 이행되지 않음으로써 갈등들이 지금 계속 가시화되고 있다. 중일 간의 따위다오, 센카쿠 문제와 동중국해 또 중국하고 아세안 국가들의 남중국해 문제가 겉으로 보기에는 이게 영토 분쟁이지만 실상은 저는 역사의 후유증으로 인식한다. 전후 처리 과정에서 청산되지 못했던 이런 역사 문제들이 지금 국제질서의 혼란을 틈타서 계속 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태평양 지역의 엑시트는 차이나 엑시트다. 중국의 전후 질서에 대한 변경 욕구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 카이로 선언에서는 미국에 의해서 4강 체제로 초대됐지만 21세기 들어와서는 자력으로 세계 중심에 등장했다. 중국은 미국에 신형 대국관계를 요구할 정도로 덩치와 힘도 커졌고 중국 안보적으로 신 안정관, 군 현대화, 경제적으로는 일대일로, AIIB 등에서 양날개를 펼치고 있다. 미국이 역내의 안전과 원칙을 얘기하면 할수록 미국의 불안감이 더 두드러지는 것 같다.

 

재팬 엑시트도 있다. 일본의 전열 재정비가 빨라졌다고 본다. 지난 잃어버린 20년은 사실 경제 침체보다는 국가전략 부재였다라고 이해를 한다. 2010년을 기점으로 경제마저도 중국에 추월당하면서 일본의 큰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고 아베 2차 집권 이후에 중국과 한번 제대로 붙어보겠다는 사무라이 결기를 느꼈다. 센카쿠 갈등은 영토 분쟁이 아니라 중일 간의 본격적인 경쟁의 파열음이었다고 저는 생각을 한다. 시진핑하고 아베 정권에 겹치는 시기 동안 중국이 역내 리더십을 더 굳히기 전에 일본이 한 번 뒤집을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제 아베는 물러났고 스가내각도 단명했다. 이제 기시다 내각이 들어왔지만 조금 불안정해 보이기도 해 좀 더 지켜봐야 될 포인트인 것 같다.

 

리밸런싱 엑시트도 있다. 재균형은 미국이 자국에 불리해진 역내 전략적 불균형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려고 하는 정책이었다. 재균형의 목표는 역내 동맹국가들과 우호적인 국가들을 모아서 중국을 압박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 아시아 태평양 정책을 넘어서 인도 태평양을 계속 얘기하고 있는데 대중국 전선이 상당히 이렇게 조여드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만큼 중국의 역량이 아태 지역을 넘어서서 인도태평양까지 확대됐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중국의 힘이 오히려 지금 더 커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 미국 국내적으로 트럼프의 4년 동안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성향 외교가 심화되었다. 이번 바이든 4년 동안에도 겉은 바이든인데 속은 트럼프일 경우 아마 오바마가 시작했던 리밸런싱은 사실 유야무야되고 미국의 우월적인 위상도 상당히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 다음에 코리아 액시트가 있다. 저는 이것을 한반도 문제의 해결점이 다가오고 있다고 이해를 하고 싶다. 한국의 독립을 약속했던 카이로 선언이 그대로 이행되었다면 동북아 평화가 실현되었을 수도 있다. 강대국들이 카이로 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을 적당한 시기에 실시하겠다고 애매하게 결의했다. 그 결과 현재 한국이 분단 상태로 남게 되었고 여전히 불안정하지만 저는 불가피한 역사의 진통으로 이해하고 싶다. 그래서 이제 한국은 국제 위상도 그렇고 통일을 주도할 힘과 능력을 가진 미들 파워가 됐다.

 

그런데 문제는 의지와 자세인 것 같다. 현재 우리는 문을 열고 엑시트를 하고 싶어도 좀 계속 머뭇대는 상황인 것 같다. 새로운 변화를 위한 단호한 신념 실천적 행동이 요구된다. 아쉬운 미국과는 문을 열고 함께 나가줄 수도 있고, 견제에 시달리는 중국에는 편안하게 또 문을 잡아줄 수도 있다. 또 예민해진 일본에는 좀 대범하게 문을 열어줄 수 있다. 또 고립무원에 빠진 북한에게는 문 자체가 되어줄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미래 통일의 문을 스스로 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다음은 한국 외교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좀 말씀드리고 싶은데 지난 한미 정상회담 G7 등 정상회의에서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상당히 첨단 기술로 무장된 선진 경제, 민주주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 또 뛰어난 방역 시스템, 강력한 군사력 등 상당히 매력 국가다. 한국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또 역량도 축적했고 국제사회에서 구축했다. 한국은 점점 국제사회에서 꼭 필요한 국가가 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이제 없는 매력도 만들어내서 포장해야 될 판에 한국은 많은 매력을 재구성해서 발산시키는 데는 아직 충분치 않은 것 같다.

 

 

그래서 한국에는 새로운 외교가 필요하다. 제가 생각하는 신 외교는. 첫 번째로 우리 위상의 부합하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또 외부가 어떻게 보고 있는지 먼저 자각해야 한다. 또 우리 역량을 인정하고 우리 역할을 스스로 긍정해야 한다. 국격을 높이고 국익을 지키고 국제사회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또 꼭 해야 할 일을 하고 꼭 해야 할 말을 하고 꼭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 협력 상생 기여 공원을 통해서 존경받고 존중받는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

 

둘째로 신외교는 지리적으로 심리적으로 내용적으로 한반도를 넘어서야 한다. 그간 한반도를 넘어서려는 그 어떤 외교적인 노력도 북한 문제만 발생하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국력과 위상도 많이 바뀐 만큼 심리적으로는 여전히 6, 70년대 대북 심리적 위축 상태에 놓인 것 같다. 이걸 빨리 극복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이어서 한반도 번영 프로세스로 나아가야 한다. 또 신남방 신북방 유라시아를 넘어서 중동 아프리카 남미 등지로도 나아가야 한다. 다문화를 포용하고 다자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셋째는 신 외교는 단기적인 이해관계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중장기 전략적 안목에서 긴 호흡을 해야 한다. 그간 한국 외교는 균형 외교를 해야 한다는 심리적인 압박이 있었다. 균형의 균은 치우침이 없고 고르다라는 뜻인데 남기정 교수님도 얘기하셨지만 꼭 매번 중간에 있어야 된다는 거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다. 매번 55가 필요는 없고 저는 균형 외교가 아니라 평형 외교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평형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상 균형을 맞추면 된다. 어떤 때는 64, 어떤 때는 46,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리의 국익을 확보할 수 있다면 전술적인 변화는 고려해 볼 만하다고 생각을 한다.

 

넷째 신외교는 미중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완화해야 한다. 국제사회는 새로운 질서가 필요한데 이것이 중국이 말하는 신형 국제 관계가 아니라 새로이 흥하는 신흥 국제관계여야 한다는 말씀을 드린다. 중국이 말하는 신형 국제관계는 어감상 미국 주도 질서를 상당히 구질서로 몰아 몰고 또 평가절하 하는 성격이 있는데 신흥 국제 관계는 미국 주도 질서를 인정하면서도 중국의 역할도 포함시키고 국제사회가 같이 발전하는 관계를 말한다. 미중 관계는 경쟁적인 측면도 있지만, 협력적인 측면도 여전히 많다. 그래서 우리가 미중 사이에 애매한 중간자가 아니라 완충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야 된다. 또 동맹인 미국한테는 아주 우호적인 조력자가 되어줘야 한다. 또 경제 관계나 북핵에 매몰됐던 중국과의 협력도 이름 그대로 전략적 협력 동반자에 부합하는 전략적 협력을 글로벌 차원에서도 전개해 볼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신 외교는 국제사회와 공생해야 한다. 코로나19로 국제사회의 기저질환과 민낯이 그대로 드러다. 국제사회는 기존의 경제 양극화에 이어서 방역의 양극화도 있다. 그래서 신 외교는 커진 몸집만큼이나 마음도 커져야 한다. 질병으로부터의 해방과 최소한 민생이 유지될 수 있도록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되겠다. 글로벌 이타주의를 실천함으로써 지구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어야 되겠다.

 

결국에 남기정 교수님이 발제문에는 쓰신 인드라망 외교, 서로가 서로를 포용하는 외교가 평화재단이 지향하는 그런 국제 관계가 아닐까 생각을 해봤다. 인드라망 외교는 평화 만들기, 또 희망 만들기에 적극적 기여인 것 같다. 평화재단이 17년 전에 처음 만들어질 때 평화, 인권, 환경이 발족 이념이었다고 얘기를 들었다. 오늘날 오히려 더 적시적이고 또 절실한 것 같다. 앞으로도 이런 좋은 담론의 장이 계속 만들어졌으면 하고 오늘 좋은 기회 주신 평화재단께 다시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토론 마치도록 하겠다.

 

   

토론 내용에 대한 답변 조한범 연구위원

 

황재호 교수님은 엑시트라는 개념을 쓰셨고 우리 안 교수님은 기후변화라는 말씀을 하셨다. 저는 그 두 개를 결합을 해서 좀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다. 엑시트는 이 방에서 나가는 거다. 이 방은 과거고 나가는 세계는 새로운 세계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대의 위험은 과거에서는 경험이 없는 본질적으로 새로운 것이다. 방을 나가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데 문재인 정부가 성공했다고 말씀드리기가 어려운 건 과거와의 이별에 실패했다. 그러니까 과거와 싸웠다라는 겁니다. 그게 바로 적폐청산이다.

 

우리가 가진 위험은 과거에서 오지 않는다. 좌우도 아니고 과거가 만들어 싸우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직면한 위험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해법이 필요하다. 그런데 좌나 우나 지금 지금 두 후보 유력한 두 후보도 과거와 싸우고 있다. 너의 과거를 내가 지켜보고 내가 되면 너의 과거를 처단할 것이라 하고 있다.

 

중세에는 인간들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코란과 성경과 불경에 해법이 들어 있었다. 그 의미와 가치가 통일돼 있었다. 그런데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하는 순간 그 의미가 통일된 접시가 땅에 떨어져 완전히 산산조각 나버렸디. 이 조각을 울면서 인간이 조합을 만들어낸 게 바로 서구적 근대성입니다. 근데 그 서구적 근대성의 조합이라는 게 오늘날 많은 현대 위험을 만들어놨고 완벽하지 않다는 게 입증이 됐다. 그래서 이제 아시아 지역 근대성의 조합의 가능성을 우리가 찾고 있는데 정치권은 아직도 과거와 싸우고 있다.

 

저는 인류세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는 홀로세에 살고 있다. 인류세는 인류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위기이기 때문에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 우리가 해결하지 않으면 자연이 자연의 시간표대로 되돌려 놓을 거다. 저는 인간의 이성을 믿는다. 근대성의 새로운 조합을 만들 가능성이 우리에게 있다. 그게 조금씩 지금 그 틀을 보이고 있는데. 우린 아직도 많은 세력들은 과거와 싸우고 있다. 동북아가 과거와 싸우고 있고 우리 안에 과거가 싸우고 있고 남북이 과거와 싸우고 있다. 그래서 지금 안병진 선생님이 얘기하는 기후 변화에서 희망을 건다. 그 기후 변화는 이 모든 과거를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의 가능성이 있고 모두의 위협이다. 이방 안에 있던 수없이 많은 갈등과 분쟁의 소지를 벗어나서 방을 손잡고 나갈 수 있는 게 바로 기후변화다. 팬데믹이고 원자력 전환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기후변화와 새로운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서 과거와 이별하고 이 방에서 나가는 그런 철학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이 오늘 이 진지한 지적 집단 지성 얘기를 지금 혼탁한 선거판이 얼마나 주시할지는 모르겠지만 역사적인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방을 나가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아시아적 근대성의 조합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지금 와 있다. 정치판도 좀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하는데 역사적인 평가를 받고 싶다면 과거와 과감하게 이별하고 미래로 가는 길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토론 내용에 대한 답변 남기정 교수

 

저는 인류세라고 하는 개념을 가져와서 기후 위기를 주제로 삼았는데 굉장히 역설적인 상황인 것 같다. 인류세라고 하는 개념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 없이는 기위 위기로부터의 탈출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인류세라는 개념은 필요하다고 본다.

 

제가 그와 동시에 지금 여러 번 말씀드렸던 것이 지정학이라고 하는 개념이다. 저는 지정학이라고 하는 개념, 또는 이해의 틀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결정적으로 이는 미군이 아프간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할 때도 지정학을 들먹이며 들어갔는데 나오면서도 이를 지정학으로 설명한다. 물론 지정학의 원리가 적용되는 영역이 있고 거기에서 나름대로 대책을 세워야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 것인 양 착각하는 것을 뛰어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새로운 말들이 필요하다. 새로운 말이 있어야 새로운 상상이 가능하고 새로운 전략을 만들 수가 있다.

 

그래서 공간이 아닌 시간의 문제를 다루는 이해의 틀로 들어가 보기도 했고, 지표의 문제가 아니라 지층의 문제로 들어가 보기도 했고, 그렇게 해서 시정학과 지질학의 시각을 통해 세상을 재구성해보려고 했다. 그로부터 생각해 보니 지정학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짧은 시기에 아주 적은 행위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사고의 체계였다. 그러니까 그 점에서 지정학을 비판해 보고자 노력했다. 강대국에서 나오지 않는 사고가 우리한테도 나올 수 있고, 그것이 핵심 개념이 되어 다음 세계로 탈출하는 문, 즉 엑시트가 될 수 있다.

 

예컨대 네덜란드가 유럽 안에서 소국으로서 여러 번 외국의 침략을 받으면서 자연 환경도 굉장히 열악한 상화에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는 그런 정치 공동체였다가 이 정치 공동체가 세계를 주름잡는 그러한 행위자로 나서게 된 데에는, 지금 두 분께서 강조하신 것과 관련지어서 말씀드리자면, 새로운 사회 체계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로티우스가 나와서 그 당시에는 전혀 없던 이른바 만국공법이라고 하는 개념을 가져왔다. 그게 우리가 지금 국제법으로 인식하는 체계였고, 지금은 모든 나라가 그 틀 속에서 행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스피노자가 만들어낸 것은 모든 현대철학의 기원이다. 그러한 새로운 사회 체계를 만들어낸 사유의 힘에서 저는 우리의 가능성을 찾는다.

 

 

그런데 제가 이번에 이와 관련해서 공부하면서 느꼈던 건 우리 안에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가 여태까지 거기에 눈이 미치지 않아서 그랬던 것이지 찾아보니까 상당한 정도로 준비가 되어 있고 그거를 발견하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공론의 장에서 조직하는 게 필요하다. 또 하나의 가능성을 보는 것은 새로운 주체의 문제다. 정치적 팬덤이라는 현상은 선진국으로 지금 진입해 있는 국가들 안에서는 별로 보이지 않는 현상이다. 그만큼 민주적인 열정이 가득한 시민들이 있다는 것인데, 지금 현실 정치가 그걸 받아들일 그릇을 갖지 못해서 이게 잘못 표현되고 있는 부분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우리가 조직화해서 이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만들어 갈 것인가라고 하는 것이 우리한테 굉장히 커다란 과제로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러한 것을 시도하는 여러 장, 광장들을 지금 열어가는 것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오늘 말씀드린 것 중에서 광장국가라고 하는 것도 그러한 의미가 있다. 제가 지금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는 광장국가라고 하는 것은 벨기에의 브뤼셀이라든지 스위스의 제네바라든지 아니면 오스트리아의 빈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그게 꼭 서울이 아니라 해도, 고려 시대 벽란도가 그랬던 것처럼, 일정한 공간적인 범위를 가진 광장을 열고 거기에 국제사회가 가지고 있는 많은 고민들을 가져와서 해결해볼 수 있다. 지금 같으면 기후 문제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고통스러웠던 역사에서 뭔가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노력도 해 볼만 하다. 예컨대 성폭력 피해로 고통받아왔던 여성들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이거는 조금 더 현실 정치로 가져오면 2015년 합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현실의 과제하고도 맞닥뜨리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여는 광장에 홀로코스트 기념관 같은 것을 만들어, 아까 제가 말씀드린 관광객의 철학에 기초해서, 관광객으로 오는 사람들이 보고 느끼게 하면 그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고 의미가 있다.

 

 

질의응답

 

(1) 조한범 박사님께 질문 - 발제에서 새로운 국가 모델로 평화 국가 행복 국가 등에서 한 6가지 지향점에 국가 모델을 제안해 주셨다. 이 모델들을 관통할 수 있는 국정 국가 운영 철학이 있다면 뭐가 될 것인지?

 

하나로 관통을 한다면 선도적 포용국가라는 개념이다. 우리 앞에는 없어서 우리가 뚫고 나가야 한다. 저는 좀 희망을 보는 게 정치판을 아까 제가 비판했습니다만 예전에 비하면 정치도 민주주의도 발전하고 있다. 경제 역시 지금 세계에 우리가 이렇게 첨단 기술들을 주도할 배터리 반도체 수소사회 이렇게 시민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적이 있나. 거대한 촛불혁명이 무혈혁명이 정치권을 변화시킨 그런 사례가 있었나. 그러면 이제 우리가 이 선도해야 한다. 그럼 뭘 가지고 할 거냐 했을 때 저는 그게 바로 포용이다. 포용경제, 정치와 국제관계의 포용, 포용사회. 우리가 이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니까 따라갔던 길보다 훨씬 더 외로울 거다. 그러나 우리가 가고 나면 그게 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이 지금 한국은 물론이고자본주의의 독주 체제를 성찰하는 거울, 우리 사회와 분단 상황을 성찰하는 거울을 만드는 작업이 아주 중요다. 그 핵심은 저는 포용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2) 남기정 교수님께 질문 - 현재 한중일 간 지역 협력을 방해하는 현실적인 요인과 역사적인 감정들이 있다. 이게 다 지정학적 배경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면 오늘 교수님께서 제시하신 지질 시정학적 시각에서 해법을 모색한다면 구체적으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그걸 하기 위해서 당국이나 시민사회의 어떤 역할이 주어질 수 있다면 어떤 것인가?

 

한중일 상호 간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을 정치 세력들이 이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그래서 결국에는 역시 민주주의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생태와도 관련해서 민주주의가 결국 관건이 되는 것 같다. 민주주의가 이 3국 속에서 건전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다 해서 일본의 민주주의를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한국은 굉장히 동적이고 액티브한 민주주의를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서 일본은 좀 정적인 민주주의인 것 같다. 이번에 일본의 총선거도 굉장히 낮은 투표율을 보였고 그걸 보면서 한국에서 일본의 정치에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좀 실망스러운 결과를 보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이번 총선에서도 미묘하지만 과거와는 뭔가 다른 것을 보여달라고 하는 국민의 의지는 보여줬다. 그래서 거기에 반응하는 것으로 지금 기시다 내각은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그러니까 민주주의의 기재가 작동하고 있는 한 단기적으로는 국민감정을 이용하는 것이 성공할 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그것이 국가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저는 아직은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특히 제가 말씀드린 기후나 젠더 분야로 가면 다른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분야에서 협력의 내용을 만들어 가면 국민감정을 뛰어넘는 제도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한국과 일본의 민주주의에는 아직은 가능성이 있다.

 

지금 대일 대중문화 개방이라고 하는 거의 마지막 한 단계를 하지 않은 상태에 있다. 이른바 지상파 티비와 라디오에서 일본의 드라마나 노래를 못 보고 못 듣는다. 이제 우리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즐기고 싶은 사람이 충분히 즐기게 하더라도 그로 인해서 한국 대중문화가 완전히 일본한테 잠식당할 일은 없다. 오히려 새로운 게 들어오면 그것마저도 우리 걸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더 큰 기회가 우리한테 오는 것이다. 일본이 지금 코로나 핑계를 여전히 들면서 외국인의 입국에 여러 가지 제한을 두고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 더 그렇다. 비자가 있어야지만 일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돼버렸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거꾸로 다 들어오라고 할 수 있다. 방역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일본인들 오고 싶은 사람들은 다 들어오라고 하고 그래서 여기서 콘서트도 열고 사람들하고 대화도 나누고 사람들을 맞이해서 뭔가 이렇게 또 모임도 만들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 문을 열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일본에 굉장히 많다. 근데 그런 것이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가 먼저 일본에 개방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일본의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것이 거꾸로 드러날 것이다. 한일 양국 사이의 선순환을 우리가 먼저 이렇게 시도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그것이 중견국이라고 하는 것이다. 중견국은 그런 의미에서 무언가가 이렇게 완성된 곳으로 향한다. 중간쯤에서 진보가 멈춰 있는 나라도 아니고. 중간 사이즈도 아니고. 중간에 끼인 나라도 아니다. 중견국이라고 하는 멘털리티를 그렇게 만들어가면 더 큰 기회가 우리한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대일 외교도 구상하고 한중일 관계도 구상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3) 안병진 교수님께 질문 - 한국 정치 구조가 현대사회에 새로 밀려드는 기후 변화 같은 새로운 도전에 좀 유연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시민의식의 변화에서만 찾기에는 너무 좀 상황이 그렇게 편한 것 같지는 않다. 제도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시민의식의 변화를 기다린다는 게 어떨 때는 좀 공허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저는 이 부분에서 생각보다 희망적이다. 미국 예일 대학의 브루스 에커만이 미국을 이중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른다. 그 이중 민주주의는 일상적인 시기는 뛰어난 엘리트들이 알아서 하고 특별하게 큰 위기가 왔을 때 시민들이 촛불 시위 등에 나서는 것이다. 거의 주로 일상적인 엘리트들이 반응성을 가지고 운영해 나간다. 저는 에커맨의 이론을 한국에 거꾸로 적용을 한다. 한국은 엘리트들이 무능하고 시민들의 민심의 바다 속에서 적절하게 이것에 긴장을 주고 쇼크를 줘서 역동성이 운영되는 나라 그래서 때로는 미국이 하지 못한 일본이 하지 못한 걸 대한민국이 한다.

 

저 같은 경우도 박근혜 정부 시절에 우리가 일본식 무슨 자민당 체제 같은 게 되는 거 아닌가 참 부끄럽게도 그 고민을 한 지 한 달 만에 촛불이 생겼다. 다행히 제가 그렇게 얘기했던 기록이 인터넷에는 남아 있지 않아서 부끄러운 기억은 사라졌다. 이게 한국이다. 지식인들이 감당할 수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그런 점에서 희망이 있다. 지금은 양당의 구심력이 강한 같으나, 이번 대선의 결과에 대해서 확실하게 예측하시는 분이 있나? 지금 한국의 대선은 예측할 수 없는 대선이다. 그리고 한국 대선 이후에 어떤 정계개편이 이루어질지 저는 한편으로는 두렵고 한편으로는 희망을 본다. 지금은 그야말로 균열의 틈새가 갈라지고 있다. 전 세계 진보의 가장 중심 축이 2030이다. 한국은 그 교과서가 무너졌다. 이게 과연 어떻게 나타날까. 아직은 미지의 영역이다. 그래서 저는 제도적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근데 중요한 건 일단은 의식의 영역에서 제도권 정치인들이 좀 더 전향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시민의식도 마찬가지다. 예를 하나 들어드리면 하버드 대학은 그저 말로만 기후위기를 얘기하지 않습니다. 하버드 대학은 기후 부총장을 신설했다. 하버드의 모든 커리큘럼에 기후위기 관점을 녹이자는 정책 방침이 얼마 전에 결정됐다. 부끄럽지만 한국의 대학교들은 과연 얼마큼 바뀌고 있나.

 

저는 굉장히 충격을 받았던 게 세상에 대선에 나오시겠다는 취지문에 기후라는 단어 한 글자가 없다. 지금 기후는 국가 안보에 대한 얘기고 경제에 대한 얘기다. 우리나라 통상부가 EU랑 지금 탄소국경세 협상하고 있다. 물론 그 이후에 화려한 공약들을 내세워다. 일단은 마음 태도가 바뀌어야 하고 그것을 우리가 대선 기간에 어떻게 압박할 것이냐. 물론 지금도 대선 캠프에 환경 쪽에 상당히 훌륭하신 분들이 일부 들어가 있다. 너무 다행이다. 에너지 기후부라든지 이런 좋은 안들이 지금 나오고 있다. 근데 아직도 한국의 불편한 진실을 포함한 로드맵을 대선 캠프들이 그리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만들어지도록 우리가 압박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의 건국의 시조들이 봤을 때는 너무나도 결함이 많은 헌법과 대통령제를 갖고 있다. 근데 이게 우리에게 기회다. 우리는 고칠 수가 있다. 근데 고칠 때 헌법의 생태 조항을 중국처럼 넣는 정도로는 안 된다. 기후 위기를 본질적으로 극복하려면 개헌에 있어서 중요한 건 지금 입법 사법 행정의 3부 체제를 넘어서는 발상을 한번 시도해 봤으면 좋겠다. 왜냐 중장기적인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은 결코 선거에서 뽑히는 정치가들이 하기 어렵다. 3의 대통령제 제3의 어떤 내각제 이런 부분들에 대한 상상력을 그려서 이걸 가지고 한번 헌법 수정 운동을 한번 펼쳐보면 어떨까.

 

 

(4) 황재호 교수님께 질문 - 호주가 AUKUS에 가입하는 바람에 중국과 갈등이 여러 방향으로 퍼지고 있다. 특히 석탄 문제를 시작으로 해서 실물 경제에 여러 대 여러 군데 영향을 주고 있는데 중국의 경제 의존도가 높은 우리 입장에서 이런 사태에 참고할 교훈이 있다면?

 

호주가 지금 중국과 상당히 큰 대립각을 세울 수 있는 것은 호주도 우리처럼 미중 사이 딜레마가 분명히 있겠지만 우리가 직면한 상황보다는 좀 다른 것 같다. 중국으로부터 지리적으로도 많이 떨어져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안보군사적인 직접적인 위협은 아니고, 경제적 압박도 크겠지만 또 중국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 자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또 우리랑은 또 입장이 다르다. 그래서 호주는 지금의 결정을 할 수가 있다.

 

우리는 이제 거기에 비하면 정반대 상황에 있다. 국내적으로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고 하지만 이것이 더이상 현실에 부합하지 않은 것 같다. 미국은 10월 말에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인태 경제 프레임워크 뭐 이런 것도 얘기를 하고 기존의 한미 관계는 안보적 동맹에 머물러 있었지만 점차 경제 분야까지도 동맹의 관계를 심화시키고 있다. 또 중국 같은 경우는 경제적인 관계가 더 크지만 북핵 문제 등 외교안보 쪽 협력 관계도 지금 더 확대하려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전략적 딜레마는 호주보다 더 심각해질 거라고 보는데 이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표현 자체가 저는 조금 우리가 순화할 필요가 있다. 다르게 해석하면 미국과는 안보 이익만 챙기는 거고 또 중국과는 경제 이익만 챙기는 것으로 오해받기 쉽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평행 외교는 경제적 단기적 이익에 너무 메이는 것보다 조금 중장기적으로 보고, 계속 명분을 축적하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또 현재 우리가 서 있는 지금 시점이 신질서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또 논의가 필요하다. 저는 뉴 노말이 아니고 어브 노말(Abnormal) 일수도 있고, 어쩌면 기존 질서가 지금 개축하는 수준인지 아니면 신축하는 과정인지 또 이런 신질서가 우리의 국익에 부합을 하는지 안 하는지 이것이 아무래도 저희가 또 고려해야 될 포인트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또 우리 조 박사님이 구겢질서가 무극화로 가고 있다고 얘기를 하시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아직은 다극화가 아닌가. 단지 지금 뭐 무극화로 보이는 이유는 미국으로부터 오고 있는 정적 변화라고 본다.

 

그래서 저는 평형외교가 미국의 분노 게이지를 좀 내려주고 국제사회의 리더로서 잘할 수 있도록 아픈 마음도 좀 매만져주고. 중국과는 언론에서도 대립을 조장하는 것은 길게 보면 좋지 않다. 어떤 때는 한 번씩 넘어가줘도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한다. 오히려 미국이나 중국이 조금 더 움찔하게 만드는, ‘한국이 보통 내공이 아니네이런 식의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이 나아갈 방향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D10도 있고 T10도 있지만, 우리가 S10이 되면 어떨까. 여기서 SSpirit, 정신적인 것에서 앞서가는 것을 말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자나요처럼 꼭 이런 모든 거를 국력으로만 풀 것이 아니라 정신적 국력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5) 남기정 교수님께 질문 - 말씀하신 삶 정치와 지질-시정학의 영역들이 한일 관계 대전환의 전선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예시를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우리가 잘 보이지 않는 일본의 모습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비록 실패는 했지만 일본은 2011년 이후로 대전환을 시도한 적이 있다. 국가적으로는 지금 지지부진한 상태다. 일본도 역시 핵과 관련한 카르텔 같은 것이 형성돼 있어서 쉽지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민당 정부조차 장기적으로는 탈원전 사회로 간다고 하는 것을 목표로 내걸고 있고. 시민사회에서는 상당한 정도로 이를 위한 노력들이 그동안의 진전을 이루어 왔다. 그래서 작은 발전소를 돌리면서 동네에서 자급자족을 하는 그런 경제가 만들어진다거나 하는 시도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한 움직임들과 우리가 어떻게 연계할 것인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다. 국가를 넘어선 국민이 주체가 된다면 직접 시민과 시민이 연대하거나 연계해서 만들 수 있는 그러한 것들이 상당히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논의들이 사실 코로나 이전까지는 상당한 정도로 있어왔다. 그리고 코로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화상을 통해서 교류하는 모습들이 상당히 있었다. 그래서 만일에 코로나 상황이 어느 정도 진정이 돼서 왕래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고 한다면 코로나 이전에 있었던 이른바 천만 이동 시대라고 하는 것이 빠른 시간 내에 회복될 것 같다. 또 하나 에코페미니즘이 또 하나 미래 구상으로 굉장히 주목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 수 있는 것이 82년생 김지영이 일본에 번역이 됐는데, 그동안의 한국 문학은 특별히 한국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읽었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한국에 대한 관심보다는 일본 안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한계를 느끼고 있고 일본 안에서 지금 가능성을 찾기 어려워진 그러한 젠더 문제에 대해서 한국이 이렇게 이러한 정도로까지 표현해내고 있다고 하는 것에 대한 어떤 놀라움이었다.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지금 상당히 많은 한국의 진보적인 것들이 일본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상상력을 조금 더 가시화시키고 현실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문제는 기후야, 바보야(It's the climate, stupid)’로 나가면 다른 것들이 거기서 보일 것이다.

 

 

이사장 법륜스님 닫는 말씀

 

두 분 발표와 네 분의 토론을 잘 들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주로 우리보다 앞서간 선진국을 따라서 모든 것을 모방해 왔다. 발표자 분들께서 말씀하셨듯이, 이제 우리가 선진국 대열에 막상 서 보니까 그동안 우리가 따라갔던 선진국도 현재 당면한 문제에 부딪혀서 어디로 갈지 모르고 방황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옛날에는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선진국에게 물어서 그들의 경험을 통해서 해법을 찾고 처방을 내릴 수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발표자와 패널 여러분 모두 지금 한국이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관점과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던져주신 것 같다.

 

인간은 과거를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살아가는데 장점이 되기도 하고, 장애가 되기도 한다. 과거에 자기가 경험했던 것을 잘 기억해서 교훈으로 삼게 되면, 그 교훈이 현재와 미래에 큰 도움이 된다. 이것이 다른 동물이 갖고 있지 못한 인간의 큰 장점이다. 반면에 역작용도 있다. 과거에 자신이 경험한 것을 상처로 간직해서 현재와 미래에 큰 장애로 작용하는 거다. 이럴 때는 너무 과거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얘기한다. 저는 즉문즉설에서 개인들의 괴로움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과거에 사로잡히는 것이 괴로움의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런데 이것은 역사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일본에게 식민지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민족적 상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남북이 분단되고 전쟁을 치른 이후 오래 동안 냉전 체제로 서로 경쟁해 왔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적대감과 위협감이 우리들에게 상처로 남아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합니다. 옛날에는 적이었지만 상황이 바뀌면 동지가 될 수도 있고, 친구였는데 상황이 바뀌면 적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세상사이듯이, 남한과 북한의 관계도 변했다.

 

북한의 공격을 받았다는 상처 때문에 늘 북한을 위협 세력으로 보고 두려워하는데, 저는 이것이 남한 안에서 특히 보수라고 이름 붙여진 사람들의 트라우마라고 생각한다. 현재 객관적으로 남한과 북한을 비교해보면, 경제력이든 군사력이든 국제 관계에서든 모든 면에서 남한은 북한을 더 이상 위협 세력으로 볼 이유가 하등 없다. 그런데도 과거의 상처 때문에 아직도 그 틀에서 못 벗어나다 보니까, 우리의 많은 국력을 북한에 너무 많이 집중하고 있지 않는가 생각한다. 우리가 이 상처를 치유해내면, 북한을 위협 세력으로 보고 두려워하기보다 위험을 잘 관리해내는 쪽으로 정책을 바꿔나갈 수 있다.

 

북한에 대한 위험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우리에게 굉장한 손실을 끼칠 위험이 있다는 것은 맞지만, 세력으로 보면 북한은 남한보다 우월하지 않다. 북한은 세력이 약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크게는 협력을 하면서 위험을 관리해낸다는 관점에 서야 한다. 북한은 이제 우리의 경쟁 상대가 아니다. 일본이나 중국 등 전 세계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

 

물론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적 관점에서 볼 때는 대한민국의 세력이 너무 작다. 우리가 중견 국가라 하더라도 미국이나 중국과 비교해서는 매우 작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가 균형점을 잡는다는 것은 우리의 희망이지 실제로 균형추 역할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균형추 역할을 하려면 일본과 협력을 해야 합니다. 일본은 과거에 우리에게 큰 아픔을 주었지만, 우리가 미래에 미중 경쟁에 휘말려 들지 않고 어느 정도 자기를 지켜가면서 균형을 잡으려면, 한국과 일본이 협력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면 그 세력이 미국과 중국의 3분의 1일 정도는 되니까 균형을 잡을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미래를 본다면 일본은 우리가 협력해야 할 첫 번째 국가다.

 

이런 측면에서 진보 세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일본에 대한 과거 상처에 너무 연연해서 환상의 적을 만들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고 협력해 나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과거를 잊으라는 게 아니다. 가상의 적을 만들지 말라는 거다.

 

남한 내에 두 세력이라고 하면, 크게 진보와 보수로 나눠진다. 하나는 일본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고, 하나는 북한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이 두 가지 문제는 하나만 해결하고 하나는 버릴 것이 아니라, 둘 다 해결해야 하고 둘 다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이것은 국민의 분열을 치유하고 통합을 가져오는 길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조금 더 미래지향적인 관점에 선다면 오늘 두 분의 발표를 이해하는 것이 조금 더 쉬울 것 같다.

 

그런데 북한을 경쟁상대로 보지 말고 더 큰 시야로 보고, 미중 사이에서 우리가 균형을 잡으려면 일본과 협력해야 된다는 이런 관점 자체도 과거 프레임의 가치관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세상은 이런 것마저도 과거의 관점에서 보지 말아야 됩니다. 즉 경쟁적 관점에서 보지 말고 협력하고 연대하는 상생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왜냐하면 기후 위기라고 하는 거대한 문제는 전 지구의 문제이고 전 인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가 오면 경쟁에서 이기거나 지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가 되고 인류 전체가 공멸하게 됩니다. 서로 협력해서 같이 살아남는 길을 찾아나간다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또 가상현실이 등장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초연결 사회가 되기 때문에 경쟁에서 이긴다이런 관점보다는 어떻게 연대하고 협력할 것인가하는 관점에서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 스스로부터 편 가르기에서 벗어나 협력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 갇혀 사는 것에서 벗어나야 대한민국이 동아시아 공동체의 중심이 되고, 세계 문명의 중심적 역할을 해나갈 수 있다. 우리가 강대국이 되어서 세상의 중심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선도적으로 새로운 가치관과 모델을 제시하는 작지만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한국이 그런 역할을 해낸다면, 전 세계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크기로 보나, 과거 역사적 경험으로 보나, 대한민국도 하는데 뭐 때문에 우리가 못 하겠냐전 세계 사람들이 이런 희망을 갖게 될 겁니다. 중국이나 미국이 이런 역할을 한다면 저건 원래 큰 나라니까 할 수 있다이렇게 되는데, 한국처럼 작은 나라에서 해낸다면 우리의 발전이 곧 세계의 발전이 되고, 우리의 희망이 곧 세계의 희망이 될 수 있다. 이런 좋은 기회가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오늘 심포지엄에서 해주신 네 분의 말씀을 더욱더 발전시켜 나간다면, 이제 대한민국이 문화면에서만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 모델, 민주주의 모델, 협력 모델, 평화 모델, 이런 것들도 앞서갈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다.

 

 

 

 

 

첨부파일 :  평화재단 창립17주년 심포지엄 발표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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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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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이용애(2021-11-22 20:36:14)
    잘 들었습니다
    평화와 통일을 위해
    제가 할수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뿐
    돌아가는 상황에 좀 무거운 마음이 남아 있습니다
  • 댓글이주현(2021-11-23 15:22:39)
    잘 읽었습니다.
    중견국가의 시민이 지녀야 할 가치관과 실천이 어떠해야 하는지 좋은 고민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잘됐으면 하는 경쟁적 생각에서 벗어나 모든 우리가 공존하기 위해 기꺼이 책임을 함께하는 자세를 실천하겠습니다.
  • 댓글박지훈(2021-11-24 07:34:42)
    심포지엄 내용 잘 보았습니다
    글이 길어 스킵하려다 읽었는데, 읽길 잘했네요 ^^
    대한민국이 위기를 극복하고 한차원 더 성장할 수 있는 여러 방향성 제시에 공감하고 감사드립니다
    결국 스님의 닫는 말씀대로 과거를 극복하고 현실은 인정하되 미래로 함께 나아가는 길이 현 시점의 대한민국과 국민들에게 꼭 필요하다는 확신이 듭니다
    긴 토론 내용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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